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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한국인의 사회심리, 정(情)과 한(恨)

by 위드유유 2022. 6. 7.

한국인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독특한 현상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성으로 인해 외국인은 그것을 오해하거나 때로는 곡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 체면, 눈치, 의례적 대화, 한, 서열 교류 등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흔히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많이 거론되던 것이나 이들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이해가 시도되었으며 몇 가지 중요한 결과들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인의 교류 정서, 정

한국 사람의 대인관계를 기술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정한 사람, 정든 사람, 정이 없는 사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람, 무정한 사람' 등등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한국에 오래 체류한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가장 부러운 것을 꼽는 것은 한국인의 끈끈한 인정입니다. 외국 기업 중에는 한국적 정 문화를 사내에 도입하기 위해 전 직원이 아침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고 가족들을 참여시키는 각종 행사를 수시로 개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인의 인간관계에는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정서적 특성이 있습니다. 정서를 개인 안의 것에서 끌어내어, 그 사회의 언어와 대인 교류의 경험에 의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그 사회의 구성적 심리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정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의 생각을 분석하여 정리하면 네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우선, 역사성입니다, 정은 상대방과 함께하는 삶과 활동의 시간적 경과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동거성입니다. 이는 공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접촉하고 친숙한 관계를 맺어 간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공간은 집 울타리이며 가족은 물론, 강아지, 가구와 같은 인간이 아닌 대상에도 정이 들 수 있습니다. 셋째, 다정성입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친근감을 느끼고, 포근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상대방의 성격적인 측면에 대한 나의 지각이 작용합니다. 넷째, 허물없음입니다. 정드는 깊이는 상대방과 얼마나 한 가족 같은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고, 찌개 그릇에 수저를 같이 담그고, 뚜렷한 목적 없이도 같이 빈둥거리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목욕을 같이하고 흉허물없이 다 터놓고 지내는 사람과 정이 듭니다.

정은 대인 관계적 정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인 교류가 정지향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개인별로 이 특징이 내면화되어 성격적인 측면에서 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정한 사람, 무정한 인간, 인정 많은 사람, 다정도 병인 양' 등의 표현에서 정의 성격적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 많은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며, 남의 어려움에 공감과 관심을 잘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행동을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약해서, 착해서, 미련해서 또는 우직해서 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지닌 일반적 특징(매력, 식견, 성품, 인격 등)이 그에 대한 호감을 결정하는 중요한 준거로 작용하는 것은 서구문화에서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지니고 있던 흉허물을 알게 되고, 상대방의 애정 표현의 변화를 주시하여,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호감의 정도가 변하여 교류가 단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상대방과의 관계마다 당사자들 간에만 성립하는 주관적 관계의 틀이 있으므로 연륜이 쌓인 관계라면 이 틀 속에서 상대방의 흉허물이 수용됩니다. 따라서 '미운 정, 고운 정'의 모순이 공존하고 '정 각각, 흉 각각'을 당연시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정든 관계에서 우선 편안한 느낌을 얻습니다. 상대방에 의지하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심리적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낍니다. 물론 이런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들었기 때문에 상대를 위한 희생이 요구되며 상대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며 공정성과 합리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정든 관계는 너와 나의 구별이 바람직하지 않은 우리 성의 관계이고 개인이 함몰된 관계이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우리 민족을 '한의 민족'이라고도 할 만큼 한은 한국인의 고유 정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이란 심리를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최상진(1991)은 이를 "자신의 불행에 대한 자책의 정념과 자신의 불행에 대한 부당함의 심리가 결합된 복합 감정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한에 대한 문헌을 조사하여 한이 생겨나기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았을 때, 둘째, 타인과 비교하면 현저히 결핍되어 고통을 당할 때, 셋째,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범했을 때 발생합니다.

한이라는 고유한 정서로 응결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1단계에서 욕구좌절을 겪으면서 분노, 복수심, 회한의 강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러한 감정의 표출이나 직접적인 해소가 곤란한 경우에 다음 단계의 심적 과정이 나타난다. 2단계에서는 억제된 분노와 적개심을 스스로 약화시키고 수용하는 쪽으로 벌어진 사건을 재해석하게 됩니다. 즉, 사건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전가시키면서 자기 비하를 하거나 재수 또는 팔자 탓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미루던 책임을 자기나 초월적인 운명 등의 탓으로 일부 돌립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렇게 재해석했던 사건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여전히 스스로가 억울했음을 느끼게 될 때, 3단계가 되는 감정의 기복이 생기고 흔히 말하는 한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한은 사회적 통로를 통해 발산되거나 예술이나 문학과 같은 승화된 형태로 전환, 표현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한은 당사자의 감정으로부터 분리되어 객관화되면, 이제 자신의 한을 남의 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평온하고 초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한은 그 억울한 마음을 남들이 몰라 줄 때 커집니다. 한 맺힌 사연을 이야기할 때 항상 당사자들은 '이 한을 아무도 몰라준다'고 되뇝니다. 한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억울한 심정을 유발한 당사자가 그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보상적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주변 사람이라도 그 억울함을 인정하고 달래 줌으로써 한의 억울함은 경감될 수 있습니다. 진도에서는 제명을 다 하지 못하고 죽은 억울한 영혼이 한을 품게 된다는 생각에 한을 '씻어 주는' 씻김굿이 오늘날도 자주 행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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