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교류는 서열성을 바탕에 두고 이루어집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에 나이에 대한 정보를 밝히며 처음 만나게 된 사람의 나이를 알고자 합니다. 존비어가 부적합하게 쓰인다면 교류가 진행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의 대인 교류에서 나이, 지위 등과 같은 서열정보의 확인이 중요한 것은 적절한 존비어 사용이라는 사회규범이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서열적 행동규범을 지키는 것은 원만한 의사소통과 어울림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서열적 교류는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서구사회에서는 상황맥락에 따라서 서열이 정해지고, 이것이 뒤바뀌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지닌 특징은 맥락과 무관하게 서열이 서로 간의 관계에 상수로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일단 정해지면 상황 맥락과 무관하게 뒤바뀌지 않고 뒤바뀌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매우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공직사회에서 후배가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 사직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공손성의 작용에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를 보여 준 한 연구는 미국과 한국의 참여자들에게 사회적 거리감 및 상대와의 지위를 변화시키며 상대에게 한 가지를 부탁하는 글을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지위가 높은 경우와 상대방이 잘 모르는 사람인 경우에 부탁의 표현은 매우 공손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경우 상대방의 지위 높낮이가 주는 영향이 사회적 거리감의 차이가 주는 영향보다 크게 나타났으나 미국인의 경우는 지위가 주는 영향은 거의 없었고 상대방과의 사회적 거리감에 따른 변화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서구에서 공손성의 표현은 말하는 내용이 상대의 심리에 영향 미치는 정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한국에서 공손성은 내용보다는 서로 간의 상대적 서열 관계에 의해 영향받습니다. 한국에서 공손성은 아랫사람의 몫이며, 기존의 관계에 도전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며 유지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이렇게 공손성의 표현에 미치는 요인에서의 문화 차를 더 들어보면, 서구의 공손성이 소통을 원활하게 가져가려는 합목적적 전략적 행위인 데 반해서 한국에서의 공손성은 서열교류 상의 도리라는 도덕적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 '지하철의 막말녀. 설혹 잘못의 발단이 노인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노인에게 막말하며 대드는 젊은이를 대할 때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은 시비를 뒤엎습니다.
서열적 교류는 두 사람이 우리성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각 성원이 쪽(부분자)으로서의 자리매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역할에 따라 존경과 돌봄의 규범이 작동하는 탓에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런 심리를 드러내는 표현으로 존대어 사용과 행위의 공손성이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주의적 사고와 가치가 확대되었지만 존대어의 엄격한 사용은 변함없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내면의 심리는 어떻든 드러난 표현에서 존대해야 하는 이중적 언어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을 강제해야 형식적 권위주의 의식을 지니고 생활하게 됩니다. 이런 심리는 아랫사람을 대할 때 상대와의 관계를 서열의 준거상에서 판단하는 양상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랫사람과 대화할 때 상대가 존대어를 자주 생략하거나, 공손함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에 사람들은 대화의 내용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상대와의 관계의 자리매김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이에 촉각을 세웁니다. 이 점에서 한국인들은 서열적 관계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서열 관계 스트레스는 자신이 상대에게 기대하는 상호관계의 자리매김이 상대의 언행으로 인해 흔들리는 경우에 경험하는 관계의 스트레스입니다. 이것이 심할 경우에 사람들은 서로 간의 관계를 재확인하거나, 재정립하거나, 관계를 단절하는 상황을 맏을 것입니다. 이 스트레스는 윗사람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느낍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아랫사람으로 여겼는데 상대가 이에 도전하는 것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열의 위치에 따라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반응유형이 다른 현상은 서구사회에서도 나타나며, 이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재배 이론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이 이론은 동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지배, 복종의 관계 양상을 인간사회에 적용시킵니다. 서열이 낮은 사람이 취하는 위협적인 행위에 대하여 서열 상위의 사람은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서열이 높은 사람이 취하는 위협적인 행위에 대하여 하위의 사람은 화해적이고, 용서를 구하는 방식의 행동을 취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신분이 지닐 수 있는 가능한 자원을 지키며, 더 확보하여 높은 서열을 추구하려는 동기에서 갖추게 된 진화적 행태라고 봅니다. 사회지배 이론은 사회적 계층과 그에 따른 신분에 동반하는 심리적 효과를 다루며, 계층을 오랜 역사 속에서 지속되어 온 사회적 경쟁의 결과라 보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우울증, 부끄럼, 창피스러움 같은 정서가 사회적 계층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열 관계 스트레스는 계층의 문제라기보다는 교류 상에서 상호 간의 연령이나 신분의 차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서열 관계 스트레스는 진화적으로 구비된 사회 지배적 심리가 존비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한국적 교류상황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빈말, 아첨, 에티켓과 의례적 언행의 차이
의례적 언행은 그 언어적 표현만 보면 거짓말, 빈말, 아첨 등과 구별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의례적 언행은 적절하게 상대의 심정을 배려한다는 행위자의 동기가 있으므로 빈말이나 거짓말과 구분됩니다. 즉, 환갑잔치하자는 아들에게 부모가 주는 의례성 거짓말(쑥스럽다, 환갑은 무슨..칠순에나 보자)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안 주려는 상황 적절한 거짓말이며 속마음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 없거나 종종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내심 기대하기도 합니다.
반면, 일반적인 거짓말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취해지며, 자신의 속마음이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첨은 아첨자가 의례적으로 했다고 할지라도 그 언행이 의례성이 아닌 본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강조하고 의례성이 아님을 상대에게 느끼게 해서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의례성과 차이가 있습니다. 예절은 상황에 따라 규정된 정형화된 행동양식으로써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하고 침해하지 않기 위한 소극적 사회규범입니다.
의례적 행위는 안 하는 것에 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표현해 준다는 점에서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길을 지나다가 만난 학생에게 교수가 "어디 가나?"라고 묻는 경우에 실제 교수가 학생의 행선지를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은 아니며 제대로 된 설명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례성 물음으로 교수는 학생에게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입니다. 아울러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 이 OO,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 있었구나." 라고 한다면 예절에는 어긋난 것이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돈기에 있다면 의례성 표현으로서 훌륭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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